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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스스로 만든 신, 그리고 그 신을 극복하려는 청춘뮤지컬 ‘에쿠우스’가 남긴 '말(馬)'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

위즈컬쳐 최태형 기자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남자는 17살 정도가 되면 자신만의 신을 만들어 낸다.

이는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다. 또한 개인의 욕심이나 욕망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동경하는 그 어느 곳에서부터 영감을 받고, 의지를 하고, 설렘을 느낀다.

그 대상은 어느 소설 속의 주인공일 수도 있고 아버지나 형제, 자매, 때로는 위인이나 성공한 어떤 이가되기도 한다. 신화 속에 인물일 수도 있고 옆집 아저씨나 형, 누나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이 아닌 생명체, 또는 하나의 물건이나 형성화되지 않는 관념이나 사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경의 대상, 사랑의 대상, 집착의 대상은 나를 지탱하는 의지가 되기도 하고 나라는 주체를 만들어 가는 부산물인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 신이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는 온전한 나의 자아를 만들어 가기 위한 필수 존재이자 나를 나로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극복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것을 이겨내고 일상이란 공간에서 세상 누구나 평범함이나 정상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간혹 이러한 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의 자아의 붕괴를 느끼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래서 그 시기를 사람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기도 하고 사춘기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연극 ‘에쿠우스’는 자신 스스로가 만든 이러한 신을 극복하려 했으나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어느 청춘의 이야기다.

물론, 연극 ‘에쿠우스’는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찌른 17세 소년 ‘알런’과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와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핵심은 스스로 말을 자신의 신으로 만든 17살 소년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을 찾게 된 사연과 이를 치료하고자 하는 의사가 소통 하는 과정에서 ‘한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이 이토록 힘들 수도 있구나’라는 공감에 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틀 안에서 자식을 보고, 이해하는 부모. 다른 이와의 소통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외로운 소년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 보호.

그렇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그 소년은 말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의지의 존재를 넘어 사랑, 그리고 집착으로 변하고 마침내 그 소년에게 말은 신이 된다.

모든 열정을 말에게 쏟는 그 소년은 사회 부적응, 사회로부터 경리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면서 가치관의 혼란, 욕망과 죄의식이라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극은 시작과 함께 ‘소년은 왜 말의 눈을 찔렀을까?’라는 의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의사 다이사트는 상담을 통해 그 소년이 말의 눈을 찌른 이유가 밝혀진다.

그럼에도 마치 소설 데미안에서 데미안을 신적 존재로 인지했던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어느 날처럼 소년은 말의 눈을 찌른 후에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이사트에게 말한 후에도 혼란스럽다.

여전히 소년은 온전한 자아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늘 무료한 삶과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 했던 다이사트는 새로운 열망과 열정을 갖게 된다. 그 소년을 사회의 한 인원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다.

다이사이트의 매일 매일이 똑같은 일상. 그리고 그 일상에서 구역질나도록 싫어진 삶이 새로운 열정을 갖게 된 순간이다.

소년이 원했던 것은 새로운 신도, 새로운 아버지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신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단계를 넘어 극복하고 이겨 내는 과정 속에서결국 억압되고 구속되어 버린 삶을 벗어나려는 극복이야 말로 그가 원했던 것이리라.

소년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연극 무대 위에는 말이 있다. 매년 새롭게 무대에 오르는 연극 ‘에쿠우스’ 속 말들은 매년 세련된 모습으로 진화되어 왔다.

원작의 큰 틀에서 작품의 주요 소제가 되는 라틴어로 '말(馬)'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에쿠우스(Equus)'를 표현하기 위해 세련된 연출이 필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말을 표현한 이들의 모습은 진짜 말이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착각을 들게 한다. 분명 사람임에도 그들의 동작, 그리고 울음소리는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말을 보게 한다.

그리고 소년과 말의 교감과 사랑을 표현하는 무대 연출은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몽환적인 환상을 느끼게 한다.

평범한 17살의 삶을 살았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자신의 틀 안에서만 보면 가끔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는 무대임에도 오랫동안 명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무대 연출이야 말로 연극 ‘에쿠우스’를 명작으로 오랫동안 사랑 받게 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연극 ‘에쿠우스’는 국내에서는 1975년 9월 초연한 이후 매 시즌 역사적인 무대를 이어오며 대한민국 연극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올해 연극 ‘에쿠우스’에는 3년만에 다시 알런 역으로 돌아 온 류덕환을 비롯해 젊은 감각의 오승훈, 서영주가 열정을 이야기 하고 다이사트 역에는 장두이, 안석환, 이석준이라는 무게 추가 놓였다.

그들의 열정어린 무대만큼 올해도 연극 ‘에쿠우스’는 17살 소년의 잊지 못할 극복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은 남는다. 다이사트의 말처럼 “과연 이것이 옳은 것일까?” 내 안에 내 스스로가 만든 신이 살고, 그 신을 극복했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옳은 것일까.

선택은 매번 자신의 몫이다. 연극 ‘에쿠우스’ 속에서 자신의 선택지는 어디인지, 그리고 자신은 어떤 선택을 했었고, 자신들의 자식에게는 어떤 선택지를 줄 수 있을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최태형 기자  wizculture@wiz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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